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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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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 양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초경을 한 소년들은 이제야 진짜 남자가 됐다고 좋아할 것이다. 처음으로 월경을 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과 종교 의식, 가족들의 축하 행사, 파티들이 마련될 것이다. 지체 높은 정치가들의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의회는 국립 월경 불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단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한다. 정부가 생리대를 더 많이 배포한다. 월경 중인 남자들이 스포츠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올림픽에서도 더 많은 메달을 획득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군 장성들, 우파 정치인,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피를 얻기 위해선 피를 바쳐야 한다"며 월경은 남자들만이 전투에 참가해 나라에 봉사하고 신..
견인, 이병률 견인 이병률 올 수 없다 한다 태백산맥 고갯길, 눈발이 거칠어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답신만 되돌아온다 분분한 어둠속, 저리도 눈은 내리고 차는 마비돼 꼼짝도 않는데 재차 견인해줄 수 없다 한다 산 것들을 모조리 끌어다 죽일 것처럼 쏟아붓는 눈과 눈발보다 더 무섭게 내려앉는 저 불길한 예감들을 끌어다 덮으며 당신도 두려운 건 아닌지 옆얼굴 바라볼 수 없다 눈보라를 헤치고 새벽이 되어서야 만항재에 도착한 늙수그레한 견인차 기사 안 그래도 이 자리가 아닌가 싶었다고 한다 기억으로는 삼십년 전 바로 이 자리, 이 고개에 큰길 내면서 수북한 눈더미를 허물어보니 차 안에 남자 여자 끌어안고 죽어 있었다 한다 세상 맨 마지막 고갯길, 폭설처럼 먹먹하던 사랑도 견인되었을 것이다 진종일 잦은 기침을 하던 옆자리의 당신 ..
어민 후계자 함현수 어민 후계자 함현수 함민복 형님 내가 고기 잡는 것도 시로 한번 써보시겨 콤바인 타고 안개 속 달려가 숭어 잡아오는 얘기 재미있지 않으시껴 형님도 내가 태워주지 않았으껴 그러나저러나 그물에 고기가 들지 않아 큰일났시다 조금때 어부네 개새끼 살 빠지듯 해마다 잡히는 고기 수가 쭉쭉 빠지니 정말 큰일났시다 복사꽃 필 때가 숭어는 제철인데 맛 좋고 가격 좋아 상품도 되고······ 옛날에 아버지는 숭어가 많이 잡혀 일꾼 얻어 밤새 지게로 져 날랐다는데 아무 물때나 물이 빠져 그물만 나면 고기가 멍석처럼 많이 잡혀 질 수 있는 데까지 아주, 한 지게 잔뜩 짊어지고 나오다보면 힘이 들어 쉬면서 비늘 벗겨진 놈 먼저 버리고 또 힘이 들면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참숭어만 냉겨놓고 언지, 형님도 가숭어 알지 아느시껴 언..
자화상 2 난수표를 풀어야 나를 읽을 수 있다니 * 2010년 1월 27일, 대학로의 이음아트에서 이 시집을 발견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가 그 제목입니다. 서문에 따르면 김민 시인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를 졸업해 2001년에 등단했다고 하네요. '본질을 보는 눈이 살아있는' 그의 시가 좋아 따로 블로그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총 86편입니다.
그토록 소중한 삶을 위해, 당신이 해야할 일? -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 올라갈 수 있을까? 올라가야만 하는걸까? 얼마 전 한국 친구와 대화 중 우연히(라기 보단 필연히? ^^) 취업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금 호주에서 인턴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 잘하면 아예 그쪽으로 취업 할수도 있다더라구요. 얘길 들어보니 사실 해외 취업은 그 친구 계획에 없던 선택이었나 봅니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도 따로 있고 또 성격상 더 역동적인 일을 원하는데, 요즘 취업하기가 워낙 힘이 드니 그 일자리를 진지하게 고려하는것 같았습니다. 천천히 생각하고 잘 결정하라고, 결국은 네 선택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말았죠. 그 친구 말하기를, 아직도 한국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부정하고 싶었지만 틀린 말은 아닌 듯 싶었습니다. 고..
당신과 내가, '우리'가 숨쉬는 공기- The Air I breathe 한 여자가 있었다. 두 남자를 잃었다. 아버지와 연인, 그 둘을 잃고 세상에 남겨진 여자는 과연 살고 싶었을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그것도 코 앞에서 목격해야했던 여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까. 'Emotion' 인간의 감정이란 대개 유한하며 상시 변하는 것이어서 대체로 환영받지 못한다. 어제의 나만 해도 그랬다. 삼분의 일을 겨우 넘긴 가혹한 과제점수 앞에서는 우울했으나 'Bye Gorgeous,'하고 손 흔드는 버스아저씨 얼굴에 기분이 좋아졌고, 내 일을 자기 일마냥 함께 걱정해주는 폴렛Paulette의 다정한 눈을 보니 스르륵 용기가 났다. 한 입 베어물고 놔두면 금새 변하는 사과의 색깔처럼, 물컵에 물감 한 방울 툭 떨어트릴 때의 그 순간처럼- 감정이란 녀석은 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