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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기쁨/나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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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ger picture, or future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조급해 하지 않기에는 내가 너무 젊다는 것도 안다. 그간 상처받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으면서도, 아닌척 스스로까지 속이려 했던건 지금의 이 시간들을 더 값진 것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나를 실패자로 봐주지 않았으면 했는데. 알고보니 그런 생각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옥죄고 있었다는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상처를 끌어안고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어 엉엉 우는게 훨씬 더 건강한 방법이라는 것도. 그래. 어떻게 더 노력하지 않아도 지금의 이 시간은 충분한 교훈이 되어 가고 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지만 그 사고가 내 인생을 바꿨고, 스물 여섯살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여기에 이르게 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과..
상강을 지나는 어느 모과의 일기 나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 밝은 미래를 그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잡생각은 늘어나고, 꿈을 그려가는 그 길 위, 내가 어디쯤 서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생활의 한 90%를 집에서 보내는 것의 장점은 가족과의 유대감이나 친밀감이 깊어진다는 거다. 부모님과 자주 시간을 보내며,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깊어지면서 자연히 친밀도도 높아졌지만 반대로 할머니와는 오히려 더 충돌하게 되었다. 할머니께선 계속 내게 이런 저런 충고를 하시는데, 그게 걱정에서 비롯됐다는 건 알지만 그걸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결국 잔소리로 들릴 뿐. 더 어려운 점은 당신이 잘 듣질 못하시니 소통이 불가능 하다는 거다. 이런 경우 나는 계속 고개를 주억거리다 수긍해야 한다. 사실 그게 아니에..
원하는 걸 이룰 때까지 비공개로 남겨둘, 20110725 일기.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2010년 마지막 날의 일기 때로는 마음 놓고 펑펑 울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이들은 나를 보고 왜 이리 많이 다쳤냐고 하고, 어떤 이들은 내가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기억은 커녕 잔상조차,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는 그 날 이후로- 탓할 사람도, 탓할 상황도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책임질 일만 남아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숨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시간을 지나- 의식없이 지내던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에 앉아있는 지금. 신이 앞에 있다면 묻고 싶다. 이건 시련인가요 축복인가요? 제가 다친 건 불행인가요 다행인가요?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시나요 아닌가요? 제가 다친 것에도 무슨 뜻이 있는건가요? 저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나요? 현실과 꿈이 뒤섞여 분간할 수 없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살려달라며 울며 잠들..
보고싶은 마음은 이미 푹 고아졌습니다. 보고싶은 마음은 이미 푹 고아졌습니다. 근래에는 고이 가라앉아 침잠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오도카니 홀로 앉아 나는 그 동안 잃어버린 인연과 잊어버린 인연들에 관해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람에 대한 희망, 그 사이 미세한 결을 구분하는 연습도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돌이켜보면 20세 이후의 나는 항상, 아니 대부분, 되도록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 사람에 대한 욕심을 그리도 부렸건만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당신과 나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던 것도 같습니다. 모두를 만나려 했던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모두와 친해지고 싶었던 나는 그 누구와도 깊게 친해질 수 없었으니까요. 상처받음으로 독해져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뿌리쳐짐으로 뾰족해져 다른 이의 진심 ..
언어의 빈곤 쓸 수 있는 언어들이 자꾸 적어져만 간다. 내뱉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있는 말들은 적어서, 스스로 입을 닫게 되. 의미없이 던지느니 그냥 마음에 담는거다.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꼭 해야하는 말,만 해야겠다. 절박함으로 글쓰고 싶다. 자꾸만 느껴지는 한계, 아니 그렇게 보이는 듯한 착각, 끝내 아니라고 믿고 싶은 욕심. - 이라고 2010/01/21 00:59에 나는 생각했었네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 다르지 않음이 이젠 무겁습니다...
이해와 소통에 관하여 눈물이 다 났다. 즐거운 사람들속에서 외롭다고 느끼니 더 비참했다. 상대방을 향한 소통의 욕구는 일방적이었으며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래서 마음은 다쳤고 끝내는 닫혀버린 것...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슬펐다가 화났다가 불쌍해졌다가 결국에는 '됐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 정도면 됐다. 할 만큼 했다. 혼자 이해하려는 노력같은거 그만 할래.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인 채로 넘어가자. 됐다. 그래, 맞지 않는 사람과 굳이 덜그럭거리며 지낼 필요 있나.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 있나.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 낫다. 서로 얼굴 붉힐 바에야 제각기 만들어 놓은 편한 인연들안에서 쉬는게 더 나을 수도 있지. 노력하다 이렇게 거절당하는 느낌이라도 드는 날에는, 가식적인 웃음과 피상적인 대화 속에서 외..
취중낙서 친구들과 밤새서 마신 술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참 많은 말들이 오갔는데 한 80%는 휘발된 것 같은 느낌. 예전엔 사람들이 일이 꼬이거나 막힐 때 '술 마시고 싶다'고 하는게 굉장히 웃기고 지혜롭지 못한 현실도피라고 생각했건만. 어젠 아니었다. 마시고 싶었다. 꽉 막힌 감정의 과잉, 스스로 의식했건 아니건- 술을 마심으로써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었던거다. 술 마시지 않고는 쏟아낼 수 없는 말들을, 술의 힘을 빌려 건네고 싶었던거다. 그렇다고 뭐 건설적인 얘기가 오간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뭐, 성공. 요건 좀 다른 얘긴데. 있는 그대로 행동할 수 없는 내가 되는, 그 장소 그 모임에 가는 것이 꺼려진다. 선배도 후배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고 싶건만. 거기서는 알게모르게 내 고유의 역할을 요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