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은 여행

(10)
270번 버스에서 만난 그녀의 웃음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청량리로 향하는 270번 버스 안. 커다랗고 네모난 통을 안고 탄, 앳된 얼굴 여학생이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순간 모였다가 흩어진다. 버스 밖 번쩍이는 네온사인들을 보며 엄마와 통화 중이었던 나는 속으로 잠깐 쟤가 왜 저러나 싶었다. 새로운 모금 방식인가, 요새는 저렇게도 하네, 하고. 실은 심기가 내내 불편했다. 다소 침체됐던 생활에 변화를 주려 열흘 전쯤 머리를 새로 했건만, 미용실 아주머니 실수로 머리카락 끝이 다 상해서다. 오늘 찾아 갔더니 보자마자 별말 않고 머리를 다시 해준다. 싫은 소리 몇 마디 할까하다가 관뒀다. 미용실 거울 속 보이는 내 얼굴은 왠지 낯설다. 입술 밑 한 일자(一) 흉터 있는 여자가,..
허우적거리는 삶 허우적거린다는 것은 의식이 생활에 더 밀착해 있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허우적거린다는 것은 사물을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똑바로 걷고 있지만, 당신의 그림자는 허우적거려요. 당신의 그림자가 똑바로 걷고 있을 때에는 당신만이 허우적거려요. 당신은 태어나서 허우적거리지 않은 적이 없어요. 당신이 부정할지라도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우리 모두는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하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반듯하게 걸으며 살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에요. 우리의 허우적거림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일 테죠. 허우적거리는 것만으로 우리는,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고요. 허우적거림은 나의 자세를 ..
'문턱에서 운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침부터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유... 사실 아는데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두려워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 말이 내 귀에 들리고, 또 다시 마음을 만들고 나를 얽매어버릴 것만 같아서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나는 세상이 무섭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말을 거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서 얻었다. 환경이 좋아서 모든게 거저 '주어지는' 삶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원하는 것, 원하는 꿈에는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갔고 결국에는 가지거나 이뤘다. 스물다섯까지의 내 삶은 그런 선택들의 총합이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야하는 어려운 삶은 아니었지만, 돌멩이 하나 발에 채이지 않..
나만 아는 이야기 왜인지 요즘엔 아무 것에도 의욕이 나질 않는다. 대체 그 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생각해봐야 기억은 나지 않을 뿐. 어느날 밤엔가 거기 서서 내려봤던 컴컴한 어둠 속으로, 다시 한번 발을 헛디디는 듯한 어지러움 뿐. 딱히 우울하다거나 죽을만큼 절망적이라거나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고 그냥 한없이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내 삶은 처음부터 이렇게 계획되어 있었던게 아닐까. 사고가 나리란걸 미리 알고 있었다 한들, 아무리 피하려고 했다 한들 결과는 똑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금 내 앞에 마주한 상황들이 시간을 타고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이 일련의 사건들이 무슨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 어떤 그림을 그..
싸이 다이어리에 썼던 일기, 이까짓 다이어리가 뭐라고, 블라블라 하고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정작 쓰려니 또 망설여진다. 망설여진다,라고 하지 말고 망설여집니다..라고 해볼까 같은 쓸데없는 고민만 드는 지금. 참 거짓말같았던 날들이 지나고도 저는 여전히 잘 살아 있습니다. 잘 살고 있다고 써놓고 보니 과연 잘 사는 것일까, 싶지만. 그래도 잘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하필 왜 나일까,라며 속울음을 삼키던 날도 참으로 많았었지만, 여기저기 살꿰맨 자국을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었지만. 쉽지 않은 시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티고 견뎌 지금은 많이 회복한 상태입니다. 더디지만 턱뼈도 잘 붙고 있구요, 잘 움직여지지 않던 왼쪽팔과 왼쪽발목도 이제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남은 건 오른쪽 다리 수술인데, 가장 크게 다친 ..
그래도 살아야겠어요. 살아남았으니까 살고 싶어요. 어머, 아가씨는 젊은 나이에 왜 이렇게 많이 다쳤어? 교통사고야? 아... 그게 그러니까요, 낙상이요. 건물 4층에서 떨어졌어요. 건물? 아니 왜? 어... 그게. 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위경련이었던거 같대요. 그것도 똑바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떨어지다가 한번 다른데 부딪혀서 살았대요. 그래두 처음보다는 되게 많이 괜찮아진거에요. 아이구 어떡해...나이도 젊은데.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셨겠어. 네.. 처음엔 진짜 심각했는데. 지금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져서요. 이제는 걱정 안하세요. - 이렇게 수십번 반복되는 대화들.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 저 말에 대답하면서, 나는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실은 남이 아닌 내게 하고 싶었던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게 믿고 싶어..
오늘의 낙서 1. 햇살 쏟아지는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질러 오면서 흘깃,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아란 하늘에 새햐안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게 2007년 7월의 하늘과 비슷하다. 수천번의 낮과 밤이 지나고 수천번의 하늘이 바뀌는 동안, 같은 하늘 아래 서있던 나는 얼마만큼 변했을까.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는 같을까 다를까. 3년전 쯤에도 요즘과 같이 아프고 아름다운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동안 난 한뼘 만큼은 자랐을까 어떨까. 2. 인간이 태어나서 이룰 수 있는게 얼마만큼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내가 살아가면서 한 '인간'으로써 뭘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이 든다. 당장 눈 앞의 취직이 삶의 목표라면 너무 허무하잖아? 끊임없이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늘 결핍된채로 살아가기엔 젊음이 너무 아깝잖아? 그런..
따뜻한 슬픔, 조용한 위로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실까? 더럽고 추악한 인간들에게 관심이 있을까? 세상은 왜 태어날때부터 불공평할까? 우리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왜 못된 사람들이 더 잘 사는걸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님은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계실까? 한 인간이 생을 다해 할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리에 떠다니던 새해였어요. 그리고 오늘, 평소 교회에서 잘 알고 지내던 K오빠와 만났습니다. 만나면 늘 툭닥툭닥 장난만 쳤지만, 서로 미워하는 척 했지만 실은 누구보다 더 정이가던 오빠. 힘들 때마다 쪽지로 기도를 부탁했던 오빠. 그런 오빠의 부친이 며칠 전 돌아가셨습니다. 암이 재발해서 뇌까지 전이되었다네요. 오후 내내 꿈을 꾸는 기분이었어요. 가족을 잃은 오빠의 슬픔이 얼마나 크고 또 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