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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일상은 아름다워

'문턱에서 운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침부터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유... 사실 아는데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두려워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 말이 내 귀에 들리고, 또 다시 마음을 만들고 나를 얽매어버릴 것만 같아서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나는 세상이 무섭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말을 거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서 얻었다. 환경이 좋아서 모든게 거저 '주어지는' 삶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원하는 것, 원하는 꿈에는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갔고 결국에는 가지거나 이뤘다. 스물다섯까지의 내 삶은 그런 선택들의 총합이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야하는 어려운 삶은 아니었지만, 돌멩이 하나 발에 채이지 않을 정도로 쉬운 삶 또한 결코 아니었다. 


제작년 이달말, 어느날 밤인가 눈을 떠보니 내가 알던 세상은 달라져있었다. 두려움이 없던 삶은 송두리채 흔들려 두려움 그 자체가 됐다. 확실하게 밝던 삶은 무참히도 추락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졌다. 턱은 깨지고 양다리는 부러져있었고, 혀와 입술은 찢겨져 있었으며 이는 빠지고 부러져 휑뎅그렁했다. 밥알을 씹지도 못해 떠먹이는 죽을 받아먹었고 볼 일은 커튼을 치고 병실에서 해결했다. 눈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캄캄해 내일은 꿈꾸지도 못했다. 아니,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하고, 그래서 아침에는 웃으며 일어나 무서운 꿈을 꾸었노라고 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영영... 깨지 말았으면 하고.  


많이도 울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무섭다며 잠들기를 거부하던 나를 보며, 충혈된 눈으로 어르고 달래다가 결국은 화를 내던 아빠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빠를 제발 믿으라던 그 말에, 그래야 네가 산다던 그 진심에 나는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눈을 감았다. 지금은 그렇게 살아남아 누리고 있는 시간이다.


두려운 건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커져간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올해 3월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내 꿈에 물을 주자... 나에게 기회를 주자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가끔은 이렇게 무너지고 싶은 순간이 온다. 그저 무참히 무너져 내리고픈 유혹이다. 스트레스를 유독 많이 받거나, 걸을 때마다 시큰거리는 발목 통증이 도무지 나아지지 않을 때 특히 그렇다. 에이 씨발. 못 해먹겠네. 철퍼덕 주저 앉아서 내 꿈을 짓이겨놓으려는 운명에게-운명인지 개똥인지 모를 잡것에게-욕을 퍼부으며 원망하고만 싶다. 기자가 되겠다는게 뭐가 그리 큰 꿈이라고.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하고 싶다는 것 뿐인데. 잘 하려는 의지도 있고, 잘 할만한 능력도 있고, 잘 하겠다고 노력도 하는데. 근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여기에 생각이 미치면 또 다시 한숨이 폭.


물음표가 자꾸 커져버려서, 그 안에 갇히거나 스스로를 가둬버릴까봐 자꾸 겁이 났다. 실은 아직도 겁이 난다. 지금 겪고있는 이 모든 것들이 의미없는 일이라면 어떡하지? 이대로 학생 코스프레만 하다 평생 이렇게 살게 되면 어떡하지? 미련할 정도로 붙잡고 있는 이 꿈이 그저 정말 나 하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말 그대로 '이상'에 불과한 것이라면 이 모든 노력은 대체 뭐가 되는건가. 그런 생각에 우울해지곤 했다. 우울해질 때면, 커피를 마시고는 했다. 카페인이든 뭐든 힘이 나면 괜찮아졌으니까. 일종의 마약이었던 셈이다. 


오늘 재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발목은 여전히 원하는 만큼 굽혀지지 않고, 그저 아프기만 할 뿐 나아지지는 않(는 것 같)고, 이 생활도 발목과 다를 바 없이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우 우울해졌을 때- 이번엔 내 힘으로 이겨내보기로 결정했다. 커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견뎌보겠다고. 괜히 도서관에 들어가 손에 잡히는 책을 빌렸다. 한겨레 신문에서 눈여겨봤던 평론가 정여울의 <시네필 다이어리2>를 빌렸다. 결론? 한 잔 커피보다 더 큰 위로와 따뜻함을 받았다. 


'모피어스도 탱크도 트리니티도 모두 네오가 '그'임을 인정했지만 아직 네오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제 네오는 자신의 가장 커다란 적수 앞에서 드디어 자신이 바로 '그'임을 믿기 시작한다. ..세상을 향해서는 죽고, 자신의 내면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용기. 토머스 앤더슨은 바로 그 용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과정에서 네오가 되고, 파란 약이 아니라 빨간 약을 삼키고, 의심의 터널과 죽음의 터널을 거쳐 마침내 '그'가 되었다. ...그 운명의 장벽을 넘을 것인지 아닌지는 바로 네오 스스로의 선택이고 능력이고 용기였다." 

-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시네필 다이어리2, 정여울)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그 평범함으로 모피어스를 구하려 할때 네오는 비로소 특별한 '그'가 된다. 네오처럼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고 싶다. 의심을 벗어나 마침내 스스로를 인정하게 될 때, 이 모든 상황이 유의미해 질 것 같은데. 그렇게 만들기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속이 상한다. 그럼에도 알아야만 하겠어서 오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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