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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기쁨/나를 엿보다

보고싶은 마음은 이미 푹 고아졌습니다.


보고싶은 마음은 이미 푹 고아졌습니다.

근래에는 고이 가라앉아 침잠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오도카니 홀로 앉아 나는 그 동안 잃어버린 인연과 잊어버린 인연들에 관해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람에 대한 희망, 그 사이 미세한 결을 구분하는 연습도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돌이켜보면 20세 이후의 나는 항상, 아니 대부분, 되도록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 사람에 대한 욕심을 그리도 부렸건만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당신과 나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던 것도 같습니다. 모두를 만나려 했던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모두와 친해지고 싶었던 나는 그 누구와도 깊게 친해질 수 없었으니까요. 상처받음으로 독해져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뿌리쳐짐으로 뾰족해져 다른 이의 진심 모질게 내친 적도 있었습니다. 어렸고 어리석었고. 이제야 돌아보니 과연, 그랬다는 자평입니다.

무채색으로 남아있는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나름의 색을 찾으려 방황했던 대학 시절을 지나, 호의와 사랑을 헷갈려했던 과거로부터 한 사람을 진정 사랑할 만큼 성장하게 된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과 시선을 마주쳤고 또 수많은 이들의 곁을 지나쳤습니다. 스치는 인연도 스미는 인연도, 모두 다 인연이었건만- 그럼에도 미련 많은 나는 끝내 뒤돌아보고야 마는 사람으로 남고야 말지만, 실은 그마저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헌데 인연의 스침과 스밈, 그 사이 당신과 나는 어디쯤일까요. 우리의 거리를 추측하며 나는 매우 슬프고도 흐뭇해집니다.




보고싶은 마음은 이미 푹 고아졌습니다.

목련이 피고 지고 여름비 내리고 천둥치고 낙엽 나리고 눈이 쌓이고 다시 꽃 피는 사이, 우리는 또 서로의 소식을 모른채 혹은 몰라하는 채로 각자의 삶을 살고 나름의 성장을 거듭할 것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 길이 닿아 만날 때엔 서로의 달라진 시차에 잠시 기우뚱, 어지러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너와 나를 합쳐 /우리/조차 긍정하는 그 믿음으로, 나는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고 돌아보던 고개를 돌려 다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당신의 안녕을 기도하는 마음으로요. 


나를 만나러 오는 그 길 위, 그대가 어디쯤인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을텝니다.


보고싶은 마음은 이미 
고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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