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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기쁨/나를 엿보다

이해와 소통에 관하여



  눈물이 다 났다. 즐거운 사람들속에서 외롭다고 느끼니 더 비참했다. 상대방을 향한 소통의 욕구는 일방적이었으며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래서 마음은 다쳤고 끝내는 닫혀버린 것...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슬펐다가 화났다가 불쌍해졌다가 결국에는 '됐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 정도면 됐다. 할 만큼 했다. 혼자 이해하려는 노력같은거 그만 할래.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인 채로 넘어가자. 됐다.

  그래, 맞지 않는 사람과 굳이 덜그럭거리며 지낼 필요 있나.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 있나.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 낫다. 서로 얼굴 붉힐 바에야 제각기 만들어 놓은 편한 인연들안에서 쉬는게 더 나을 수도 있지. 노력하다 이렇게 거절당하는 느낌이라도 드는 날에는, 가식적인 웃음과 피상적인 대화 속에서 외롭기만 그지 없으니까. 기분도 그지 같으니까. 필요 없다. 

  이제껏 내게 '이해'와 '소통'은 늘 어렵고도 재밌는 숙제와도 같았다. 삶을 뒤흔드는, 알 수 없는 무게를 지닌 단어.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어갈수록 소통에 대한 욕심도 기대도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껴. 누군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허상에 가깝고, 이해는 커녕 오해라도 안 해주면 고마워해야 한다는 걸- 그런 현실을 깨닫는 과정은 내내 아프고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젠 정말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리 행동하는게 맞지 싶다.

  서로를 원하는 적나라한 욕망들- 그 부딪히는 시선 가운데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하여 불청객이 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그가 야속하고 미웠지만 어쩔 수 없으려니. 이걸부러 말해서 서로 불편해하고, 그걸 넘어서려고 노력할 만큼의 시간도 의지도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다. 관계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차라리 홀가분하다. 마음이란게 이리 쉽게 버려지기도 한다. 놀라워라.

  아리고 안타까웠던 마음을 지나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하기사 사람사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제 뜻대로 되는 일 거의 없으니까. 당분간 새로운 인연보다는 오래됐지만 소중한 인연들 돌아보며 지내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만 챙기며 살기에도, 시간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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