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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기쁨/나를 엿보다

안녕.

 


2007년 3월 24일 23:25, 일기 


인간 관계를 끊는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이렇게 글로만 써도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은데
2007년 3월, 숨겨진 자의와 드러난 타의에 의해서
나는 누군가와 관계를 끊었다

'끊겼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갖가지 좋았던 기억들을 부여잡고
이것들을 어찌해야하나, 갈곳 몰라하고 있다

이런 일도 사랑해 마지않는 삶의 과정일까,
앞으로도 몇번은 더 당해야 하는가 혹은 내가 할것인가
처음 접하는 일에 어리벙벙하고 조금은 슬프고
피가 멎을 때까지 한동안은 많이 아플것 같다


  + 2007.03.25 

 기차가 사람들을 뱉어내는 동안
그 속에 멈춰서서 우리는
자꾸만 서로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만 같았어

왜 자꾸 나를 잔인해지게 하니..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왜 이렇게 나쁘니..
네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 아프더라 
너 역시 그랬을테지




 
2010년 3월 24일.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오래전 헤어진 그 사람이, 믿기지 않게도 눈 앞에 서 있었던 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와 눈을 마주쳤고, 놀란 눈을 피해 나는 지나쳤고, 걸어가서 무너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구나. 살다보니 마주치기도 하는구나.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 코 앞에서.


3년전 그 사람이 내게 등을 돌리고 멀어져가던 때, 내가 그의 손을 끝내 뿌리쳤던 때로부터 시간은 이리 순하게 차곡차곡 쌓여왔는데- 하여 그 날선 마음도 많이 무뎌졌는데- 그때 남은 흉터는 오히려 선명해져만 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열심히 지워내고 밀어내며 지내왔는데, 아마도 이건 평생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성질의 것인가. 짧고 얕았던 추억이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을 잡아끌고, 서툴렀던 관계의 시작과 끝이 내내 무거운 죄책감으로 남게 될지 그때는 미처 몰랐으니. 혼자 앉아서 나는 억울하고도 무참했다.


처음으로, 자의로 '끝낸' 관계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그렇게 끊길수도 있다는 사실이 허망하고 우스웠지만, 당시의 난 살갗을 벗겨낸 듯 몸서리치게 아팠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흘렀고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졌다(고 생각했다, 얼마전까지는). 그렇게 보편적인 이별의 과정을 잘 밟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만나고나니 잘 쌓아왔던 모든게 허물어지는 기분이랄까. 언제까지 미안해할거니. 언제까지 그렇게 피해다니기만 할거니.... 마주칠때마다 이리 감정에 휩쓸려 무너질 수는 없는 법. 빛바랜 과거에 얽매여 빛나는 현재를 빼앗길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통해 깨닫는 내가, 촌스럽고 밉다.


그러니 안녕, 이제 정말 안녕,
이제 난 흐르는대로 널 놔둘거야. 한줌의 한줌 기억까지 다 버리고, 가끔 생각이 나도 이런 글은 다신 쓰지 않을게.


잘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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