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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기쁨/나를 엿보다

취중낙서

김예슬의 책. 글.


친구들과 밤새서 마신 술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참 많은 말들이 오갔는데 한 80%는 휘발된 것 같은 느낌. 예전엔 사람들이 일이 꼬이거나 막힐 때 '술 마시고 싶다'고 하는게 굉장히 웃기고 지혜롭지 못한 현실도피라고 생각했건만. 어젠 아니었다. 마시고 싶었다. 꽉 막힌 감정의 과잉, 스스로 의식했건 아니건- 술을 마심으로써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었던거다. 술 마시지 않고는 쏟아낼 수 없는 말들을, 술의 힘을 빌려 건네고 싶었던거다. 그렇다고 뭐 건설적인 얘기가 오간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뭐, 성공. 

요건 좀 다른 얘긴데. 있는 그대로 행동할 수 없는 내가 되는, 그 장소 그 모임에 가는 것이 꺼려진다. 선배도 후배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고 싶건만. 거기서는 알게모르게 내 고유의 역할을 요구하고 나 또한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있고. 중요한 건 그들이 보는 내 모습과 내가 보는 내 모습이 괴리감이 있다는 것. 나서서 나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오,하기도 뭐한거다 이건.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건데 이건. 문제는 그럴만한 시간도 노력도 없다는 거. 즐겁게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혼자 이런 생각하고는 좀 슬펐더랬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방법- 그걸 배워가는게 어른이 되가는 과정인가 싶다. 점점 더 영리해지고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그러면서 어른이 되가는가 싶다. 나쁘지 않다. 지금 느끼는 두통도 나쁘지는 않은데, 그저 휘발돼도 괜찮은 것과 휘발돼서는 안 될 것을 구분할 수 있었으면. 건 그렇고 오랫만에 만난 친구 녀석이 반가웠다. 많은 시간과 변화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녀석의 뿌리, 그런 견고한 힘같은 게 보여서... 또 반가웠다. 

아, 한가지 더. 누구든 알면서도 모른척 외면하고 싶은 트라우마 같은게 있고 그를 지키기위해 나름대로 정당한 논리들을 만들어내는데, 결국은 그걸 부수고 넘어서야만 삶의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는게 아닐까. 그게 추락인지 도약인지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고. 뭐래 나 아직도 취했나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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