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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배우며/황홀한, 글감옥

축복의 땅에서 다시 찾은 하나님



아래 글을 쓰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비록 벅찬 병원비를 메꾸기 위해 상금을 노린^^* 공모 수기였지만 다른 곳에선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신앙 얘기를 할 수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솔직하고 담담하게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새로이 글을 쓰긴 했지만 예전 글을 참고한 것도 많고, 썼던 표현들이 다시 등장한 것도 사실이라 글의 완성도가 높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래도 고민 고민해 완성한 소중한 내 글, 무엇보다 엄마가 읽고 기뻐하셨으니 또한 그걸로 만족. 지금도 감사하지만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또 정말 감사하겠는데 말입니다…. 헤헤:)           

(/희망방송 신앙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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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1. 중간 부분의 두 단락은 글을 작성하다 편집할 때의 실수로 내용에서 빠졌던 것. 덕분에 저 부분은 없는 채로 수기에 응모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때는 또 그만한 뜻이 있으리라고 믿고 그냥 그대로 올렸다.

* 사족2. 3월 31일 희망방송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슴 두근반 세근반하며 들으니 아쉽게도 수상자 3명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최종 심사작 다섯 편 가운데 글이 뽑혔단다. 해서 나중에 수상작으로 문집을 내는데 거기에 함께 원고를 싣고 싶다고 하셨다. 소정의 원고료도 있으니 그저 아멘, 아멘:) 헤헤. 참, 그래서 아래 실린 원고는 이전 글을 수정해 다시 올린 것입니다. 


  



'축복의 땅에서 다시 찾은 하나님'


           
                                                                                                                      유성애                   



하나님, 어째서입니까…?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25년을 살아온 지금까지 저는, 제가 비록 대단히 좋은 환경이나 풍요로운 가정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어도 스스로 뭔가를 바라고 그를 위해 노력하면 뭐든지 성취할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늘 앞일을 예비하며 계획하기를 즐겨했고 하나하나 그것을 이뤄가며 자신감을 얻고는 했습니다. 대학교 진학을 비롯해 장학금을 받는 것이나 단 한명을 뽑는 교환학생에 선발되는 등, 제가 그렇게 살아왔던 탓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저는 제 뜻대로 삶을 계획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왔지요.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었던 삶. 그런데 그런 제 신념을, 한 순간에 산산조각 깨트리는 일이 얼마 전 일어났습니다.


2010년 11월 2일,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4개월 전 저는 제가 살던 건물의 4층에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 사고로 팔다리가 부러지고 턱이 깨지는 등 중상을 입어 중환자실에서 20여일을, 일반병실로 옮겨져 3개월을 넘게 입원하며 치료 받고 있지요. 이상한 점은 머리를 다치지 않아 정신은 또렷했던 제가, 다른 건 똑똑히 기억하는 제가 이상하리만큼 정확히 그 낙상 사고가 있기 전과 후의 기억만은 지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해서 처음 사고가 났을 때도 경찰은 제 사고를 단순한 자살시도로 추정 했었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제가 그럴 리 없다며 항의했고, 다행히 그 건물의 CCTV를 확인하자 제가 건물 복도에서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져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CCTV 영상을 봐도 그저 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뿐, 그 날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지금까지도 낙상 사고의 원인을 위경련이라고 추측할 뿐이지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고 당시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상태가 위독해,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다 겨우 깨어난 12월 초.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가 다친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나를 왜 여기 묶어 놨냐며 집에 가겠다고 병원에서 내보내달라 울부짖었습니다. 상처의 고통이 너무 심해 밤마다 잠들지 못해 마약성 진통제를 찾았던, 그 와중에도 병원을 나갈 거라고 소리치는 절 보며 부모님도 울고 친구들도 고개 숙여야했던…. 모두가 견뎌내기 힘들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제 눈으로 부러진 다리의 상처를 확인하고 그 간의 상황 설명을 듣게 되면서, 저는 제 앞에 놓인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억울할 뿐이었지요. 왜 하필 나였을까요. 왜 하필 그 날, 그리 늦지도 않았던 그 시간, 복도에서 비틀거리던 저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걸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발로 걷고 뛰어다니던 기억이 생생하고 그래서 당장이라도 일어나면 다시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두 다리를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몇 개월을 누워있어야만 한다니. 그렇게 해도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니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평소에도 자존심이 강해 뭐든 스스로 해내길 좋아했던 제가 대소변은 물론 간단한 세수조차 할 수 없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도움 받아야 했지요. 저는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양다리와 팔이 모두 부러져 있고, 정작 자신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고 때문에 앞으로도 이 모든 수치와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야만 한다니…. 그러나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탓할 곳도 없어, 그저 홀로 억울하고 분통함에 내내 마음만 상할 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4층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는데도 가장 중요한 허리와 머리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희 부모님께서는 항상 감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떨어지는 저를 받으신 거라고,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만 다친 것은 정말 ‘기적’이라며 부모님은 제게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지요. 그러나 부모님과 사람들의 말에 상관없이 제 마음은 계속 딱딱하게 굳어져 갈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감사하기에는 제가 견뎌 내어야할 상황이 너무나 벅차 보였고, 참아야할 고통이 너무 컸으며 다 낫기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멀어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사람들 말처럼 내가 떨어지는 걸 받으신 거라면 이미 그 전에 사고를 막으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 앞에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 담담한 척 웃으며 얘기하면서도, 속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돌아가고 밤에 혼자 잠에 들 때면, 깜깜해진 병실 안 천장을 바라보며 이 모든 상황이 꿈이었길…, 내일 아침 깨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악몽에 불과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좋아져 병원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게 되었지만 한번 닫힌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형편없이 망가졌다’는, 사람들이 가볍게 던진 말에도 쉽게 상처받았고 칼로 벤 듯 정확히 지워진 사고의 기억 앞에 자꾸만 절망하곤 했지요.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시편의 말씀,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말씀은 읽을 때마다 눈물부터 쏟아졌습니다. 예배시간에 괜스레 목사님을 쏘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모난 마음 앞에서는 은혜로운 말씀도 튕겨져 나갈 뿐이었지요. 그렇게 예배시간에 일부러 딴생각과 딴 짓을 하다가도, 무너진 마음 탓에 저는 자주 울고 싶은 위태로운 기분이 되고는 했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혼자 물어보면서 자꾸 올라오는 울음을 삼켜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님, 제가 진짜… 진심으로 궁금한 게 딱 하나 있는데요. 저같이 이렇게 형편없이 깨어지고 부서진 사람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이렇게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경험으로, 언젠가 이루실만한 일이 있기는 할까요? 어리석고 약하고 부족한 내가,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도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이건 정말 아무도 내게 대답해줄 수 없는 건데. 하나님만은 알고 계시잖아요….’


눈물로 드린 제 기도가 전달되었던 것일까요. 하나님은 점차 여러 가지 다양하고 세밀한 방법으로 제 완고한 마음을 만지기 시작하셨습니다. 옆 자리에 입원한 권사님과의 인연으로, 이전엔 알지도 못했던 장로님께서 저를 위해 매일 새벽 찾아와 기도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5년 만에 찾아온 친구는 ‘꿈이있는자유’ CD를 선물했는데 그 찬양을 밤낮으로 들으며 상한 마음이 치유됨을 느낄 수 있었지요. 부모님께서 저와 제 오빠의 이름으로 3년 넘게 봉헌하신 일천번제 기도가 정말 신기하게도 제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에 끝이 났다는 사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본교회의 온 성도들이 합심해 절 위해 울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빌려주신 ‘내려놓음’이란 책과 아버지께서 주신 ‘세 왕 이야기’ 등 예전엔 손도 대지 않았던 신앙서적을 읽으며 이런 일을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고, 매주일 병원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또 아무 이유 없이 시련을 감내했던 욥기서를 통해서도 상처받았던 제 마음이 풀리고 회복되어져 가는 걸 느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어머니께서 병원에 있던 저를 대신해 뽑으신 저의 2011년 올해의 말씀은
「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4) 」,
어머니께 주신 말씀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시편118편 6절)」었습니다. 제 깨어지고 상한 마음을 위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감사의 눈물이 났습니다. 상황마다 다르게, 그러나 계획된 것 마냥 그때그때 꼭 맞는 방법으로 제게 찾아왔던 그 위로들을 어떻게 다 기록할 수 있을까요.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주의 은혜, 그 앞에 부족한 제 글 솜씨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제가 만나는 사람들과 듣는 찬양 · 읽는 말씀과 신앙서적 등 창의적인 방법으로 저를 치유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점차 제 속사람 안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점차 제가 내뱉던 원망과 불평의 말들은 감사와 찬양으로 바뀌게 되었고, 처음엔 재앙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사고가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아왔던 저를 다시금 그에게로 향하게 한 ‘축복’이라고까지 확신하는 믿음이 제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약한데서 완전해지는 하나님의 은혜


엊그제 수요예배 때는 한국 밀알 선교단과 어완수 목사님이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바울의 육체적 가시에 대해 설교하시며 우리의 낮아짐을 통한 하나님의 높아짐에 대해 설명하셨지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등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던 바울이, 정작 자신의 질병만은 고치지 못했던 것 말입니다. 바울은 이 병을 두고 고침받기위해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바울에게 그저 “내 은혜가 네가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완전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행하는 이적과 계시로 교만해질까 염려하신 하나님께서 고쳐지지 않는 육체적 가시를 통해 그를 겸손하게끔 만드신 것이지요. 바울은 이를 두고 고백합니다. “나는 나의 약한 것을 더욱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러 있도록 하겠습니다. … 이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5~10절)


목사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저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또 아끼시는 저이기에 오히려, 모든 일에 교만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살았던 저에게 이런 육체적 가시를 주신 것이겠지요.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니 제게서도 이런 마음의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하나님, 주의 은혜가 내게 족합니다. 족하고 또 족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감사의 고백을 하면서도 아직도 때때로 제 안에 해결되지 못한 질투나 시기가 있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기자’란 직업, 거기 먼저 도달한 친구들을 보면 왠지 화가 나고 속상한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하니까요. 이런 제 나약함과 더불어 앞날의 불확실함도 두렵습니다. 앞으로도 수술이 더 필요한 저는 두세 달은 더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에도 재활 훈련을 오래 받아야 할 테고 턱이 깨지면서 부러졌던 치아를 고치기 위해 치과도 가야겠지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 낫는 그날까지 아픔을 견디며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20대 중반의 창창한 나이, 아직 채 피어보지도 못한 저에게 닥친 혹독한 이 상황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정말 저주받은 재앙의 땅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나 저는 이런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고 확신합니다.


무엇보다 사고를 통해 교만했던 제가 낮아지면서, 하나님이 다시 내 안에 주인 됨은 물론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분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늘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시끄러웠던 제 마음이 잠잠해지고 조용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만을 위해 기도했던 제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꽂아만 두던 성경책을 펴서 주님의 말씀을 읽는데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달고 영혼에 힘이 되는지요. 어제는 같은 병실의 친구가 큰 수술을 받고 돌아왔는데, 끙끙 앓는 그 친구를 밤새워 간호하면서도 제 손의 온기로 그 친구의 차가워진 손을 잡아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사고 전부터와 사고 당일,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내 생각과 내 계획대로, 지극히 인간적인 뜻으로 삶을 계획하며 하나님을 무시했던 저의 교만함을 꺾으셨고,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허락하셨으며, 다리에 쇠심을 박고 있는 고통스러운 과정 가운데서도 오히려 참 평안과 큰 기쁨을 맛보게끔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고 후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으며 마음 또한 늘 감사함이 흘러넘치게 되었으니, 주님을 믿기로 결심하자 이전엔 보이지 않던 삶의 축복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변함없이 신실하신 주를 믿고 의지하기에… 아직도 저는 연약하고 지극히 인간적이며 불완전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는 토기장이요 나는 진흙이니, 모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그 분의 선하신 뜻이 분명 있으리라 믿습니다.



건강하기만 하던 스물다섯 아가씨가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4층에서 떨어지고, 생사를 넘나들다가 겨우 깨어나지만 사고의 기억은 전혀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영화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지만, ‘왜 하필 나였냐’고 부르짖는 원망에서 ‘하필 나여서 다행’이라고 감사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도, 그런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몇 년을 바라며 준비해왔던 직업에 다시 도전하게 될지, 아니면 하나님께 지금 제게 부으시는 마음을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 그러니까 의료선교 쪽으로 향하게 될지 말입니다. 사실 그보다 가까운 일, 그러니까 제가 다시 온전하게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저는 예측할 수 없고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희망, 지금껏 저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 주님께서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하시며 결국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리라는 믿음이 제 안에는 있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 때는 알게 되겠지요. 보이지는 않지만 늘 사람의 생각을 초월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금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그 날,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세세히 준비하고 실행하신 주님의 큰 사랑과 신실하심을 함께 찬양하길 기도합니다.



지금 저는, 주님의 은혜가 넘쳐흐르는 축복의 땅에 서 있습니다.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새롭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어찌되었든 살아있기만 하면 희망은 항상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희망은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요. 지금도 제 약함으로 인해 주님의 완전함을 증거할 수 있고, 언제든 변하기 쉬운 제 생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크고 온전한 계획 속에 참여하고 있음이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아닌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이 약속의 땅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사고 이전부터 사고 후까지, 제 태초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신 주님께 모든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명기 11장 10절~12절)』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장 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