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배우며/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


- 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

2010년 1월 20일, 용산에는 비가 내렸다. 무고한 여섯 명의 사람이 죽은, 그야말로 '참사'가 일어난 지 정확히 1년째. 남일당 건물 앞에서는 고인들을 추모하는 마지막 문화제가 열렸고,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손뼉를 치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애써 슬픔을 털어내는 사람들 틈에 서서 가만히 남일당을 올려다봤다. 흡사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을 뿐 아니라 시커멓게 화마에 잡아먹힌 모양 그대로 남아있는 컨테이너 상자.

앞 건물의 옥상에는 쓰다가 만 가재도구와 허름한 옷이 들어 있는 낡은 서랍장, 그리고 초등학생이 썼을 만한 은색 연필깎이가 뒹굴고 있었다. '진짜네. 여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 진부한 문구가 실체로 느껴지던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쇳덩어리가 보였다. 오래된 십 원짜리 동전 한 개. 질척거리던 흙바닥처럼, 그날의 기억은 습하고 축축하다.

며칠 뒤 다시 용산을 찾았다.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떠들어대는 영화 '아바타'를 보기 위해서였다. 예매하기가 흡사 겨울철 딸기 구하기라 결국 웃돈을 얹어주고 암표를 사야 했다. 으리으리하고 삐까뻔쩍한 H사 아이파크 몰. 자본주의의 첨병인 그 건물 안에서 나는 우스꽝스런 색동안경을 쓰고 영화를 봤다. 현대 3D 입체 기술의 결정체, 넘쳐나는 CG로 정신없던 스크린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니 어느새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하나 둘 씩 마냥 행복해만 보이는 사람들이 제각기 웃고 떠들며 영화관을 나섰다. 바닥에 놓인 가방을 집어드는 데 뭔가 반짝하고 빛났다. 또, 십 원짜리 동전이었다.

같은 용산, 다른 공간에서 주운 십 원짜리 동전 두 개. 집에 와 그것들을 놓고 보니 같은 동전임에도 모양새가 달랐다. 남일당의 십 원은 밟히고 굴러다녀 여기저기 흠이나고 더러운 반면, 영화관의 십 원은 마치 새 동전처럼 광택이 흐르고 외관도 깨끗했다. 아무것도 아닌 이 십 원짜리 동전 두 개가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을 연결한다. 마치 현실과 가상 세계를 연결하는 아바타처럼 말이다.

- I SAW YOU

용산 CGV와 용산 남일당은 반경 500M, 어른 걸음으로 채 15분이 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 상이한 각각의 추억은 슬프지만 결국 모두 용산의 모습일 테고, 나아가 2010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일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부족에게는 서로를 존중하는 그들만의 인사법이 존재한다. 이마에 손을 얹고, 진심을 담아 하는 'I SEE YOU (당신을 봅니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진정한 방법은, 바로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여 책상에 놓인 십 원짜리 동전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거기, 사람이 있었다고. 


(2010/02/05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