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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배우며/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한열아, 이놈아, 장하다 내 미운오리새끼…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도 거의 정신줄 놓고 살아가지만, 오늘만큼은 꼭 포스팅을 하고 싶었다. 오늘이 이한열 열사의 기일이자 내일이 바로 87년 6.10 항쟁이 23돌을 맞는 날이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을 뒤집고 민주주의를 이끌어낸 6월 항쟁, 그 도화선은 바로 연세대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었다. 국민평화대행진(6·10대회)을 하루 앞두고 이 대회에 출정하기 위한 시위를 연세대 앞에서 벌이다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뇌손상을 당한 열사는 결국 7월 5일 심폐기능 정지로 사망하고 만다.

 나도 잘 몰랐는데 이한열 열사와는 알게 모르게 인연이 얽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2005년 새내기 시절, '풍자'란 주제로 연 흑백 사진전에서 나는 그의 사진을 패러디해 '술취한 대학생'을 풍자하는 사진을 찍었다. 당시엔 그 사진이 얼마나 유명한지,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전후 맥락과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는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게다가 내가 엄청나게 존경하는;; MBC의 이상호 기자도 그때 같이 시위에 참가하고 있었단다. 이한열 열사의 바로 뒷줄에 서 있었다는 사실. 이상호 기자의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 책을 보면 '한열이 형'이라 말하며 그 상황을 회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알게 된 뒤로 이한열 열사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20대 젊은이의 죽음은 그 주인공이 누구든 안타깝겠지만, 민주화를 위한 순수한 열정을 지녔던 대학생이 그렇게 쉽게 스러져야만 했는지...아무리 생각해봐도 또 안타까울 뿐이다.

결연한 그의 맑은 정신을 배우고, 그의 맑은 뜻을 잊지 않고 품으며 살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


'풍자'   
         - 2005/12/09 23:45 네이버 블로그에 쓴 글

며칠전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학술제를 했었지요.
저는 실습실 중 암실 소속이라, 교내에서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풍자'란 주제로 찍은 사진.. 사진 잘 보이시나요?

팜플랫에 들어간 사진 설명은 이렇습니다.
'대학새내기. 나는, 술집중흥과 MT섭렵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대학에 들어왔다?'

비교를 통한 풍자였어요.
저 옆에 붙은 것은 1987년 6월항쟁때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이한열 열사사진.
제가 찍은 사진은 밤 늦게 대학옆 주점가에서, 술에 취해 쓰러지는 대학생을 친구가 부축하는 사진.
그런데 정말 비슷하게 닮았죠? :) 찍느라 고생 좀 했거든요.

손석춘씨의 소설 '아름다운 집'에서 읽은 이진선씨의 일기중에,
'사회로 이미 난 들어섰다. 오늘의 조선이 대학인에게 요구하는 지식인의 책임앞에서
결코 뒤돌아보거나 옆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걸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지금 대학에 들어온 수많은 새내기들 중,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구요.
운동권이니, 그런 걸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 뭔가 생각하는 사람..
저 스스로에게도 따끔한 풍자 사진이었어요.

어쨌든,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해주어 정말 고마웠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한열 열사. 그의 죽음은 민주화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정태원 기자가 찍은 당시 사진.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이한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열사를 친구들이 부축하고 있다


열사는 곧바로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한달뒤 사망하기에 이른다


어머니의 편지, 장하다 내 미운오리새끼


역시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헌사


(이한열)어머님께 드리는 글

오늘도 저는 병원 3층 복도 한 구석에서 우리의 친구 한열이의 회복을 빌며 밤샘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바쁘신 중에도 안녕하신지요. 진실을 말하고 최소한의 권리를 얻고자하는 우리의 외침마저도 이제는 목숨을 내걸고 해야 합니다.

며칠전 친구 한열이의 일을 당하고 나서 너무나 큰 슬픔과 충격에 허둥지둥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우리의 자유, 우리의 진실을 찾아 나서야 할 때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자유와 진실을 외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학생들도 시험을 연기하고 여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염원하던 민주사회, 사람사는 세상은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아직은 때묻지 않은 소박한 양심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 나라의 역사가 저희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저희 모두는 어머님 아버님의 소중한 자식들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인 것이지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 우리 곁에서 웃고 울며 함께 분노하고 정의를 온몸으로 부여안으려던 친구 한열이가 그것을 완전 부정하려는 세력들의 반인간적 폭력에 의해 지금 병실 한 구석에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위선이다"라고.

이 말은 바로 오늘의 상황을 기다리며 오래오래 초조하게 간직되어온 이 시대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어머님을 그리 즐겁게 해드리지 못하고, 일찍일찍 들어오라는 말씀을 어겨 밤이 깊어서야 들어가 어머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저는 불효자였습니다.

어머님, 저는 불효자입니다. 앞으로도 불효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떳떳하고 자랑스런 불효자가, 아니 불효자일지라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설 것입니다. 어머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결코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 되려 합니다.

                                                         - (한열의 친구) 당신의 아들 올림.   출처: 이한열 기념관


* 이한열 열사 온라인 기념관 http://www.1987060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