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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배우며/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어느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즐거운 파티'



군대갈래, 아님 감옥갈래? 

  - 어느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즐거운 파티'에 다녀오다



'양심적 병역 거부'란 단어, 혹시 들어보셨나요? 간단하게 네이버에 타타닥 쳐보니 '병역 ·집총()을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절대악이라 확신하여 거부하는 행위'라고 나옵니다. 한 마디로 군대에 가는 것을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이유로 거부하는 것이죠. 한 가지 확실히 말해둬야 할 것은 병역 '거부'와 병역 '기피'는 다르게 해석되야 한다는 점입니다.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병역 거부는 군대 가는 것은 거부하나 그만큼 개인의 자유를 포기할 의사가 있는 반면 병역 기피는 '국방의 의무' 자체를 피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따라서 후자는 좀 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죠.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근래 들어서 '군대'에 관한 관심이 많이 생겼는데요. 이는 얼마 전 읽은 '대한민국은 군대다'(권인숙,청년사,2005)라는 책이 굉장히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권인숙씨는 1987년 3월 '부천 성고문 사건'을 당당히 밝혀서 화제가 됐던 분인데, 현재 여성학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여성학자의 관점에서 본 평화와 군사주의,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저자의 경험에서 시작된 군사주의에 대한 고찰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을 뿐더러, 제 어린시절 또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많으니 따로 블로깅 해야할 것 같네요. :)


그러던 와중에 '현민의 병역거부선언'이라는 웹자보를 발견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이라는 사이트에서였는데요. 바로 '현민'이라는 분께서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 결국 양심적인 이유로(종교적 이유 아님) 병역을 거부한다는 자리였죠. '오잉? 이게 뭐지?', 관심이 가긴 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 망설이고 있던 차에^^; 자칭 타칭 '군대의 아들'인 K모 선배와 함께 용기내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체 이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병역 거부 선언을 하는지 궁금했거든요. 관계자 말에 따르면, 보통 양심적 병역 거부는 기자회견과 함께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기자 몇명이 모인 자리에서 병역거부에 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히고, 질의응답으로 이뤄진 딱딱한 분위기라고 하는데요. 이 분은 좀 신선하게 '파티'를 준비하셨더군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지인들과 함께 다소 발랄하게(?) 진행된 병역거부파티, 어땠는지 구경 좀 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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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씨는 11월 10일 입대하라는 영장을 받았지만, 군부대로 가는 대신 홍대근처에서
지인들과 모여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홍보글 중에서)



이게 제가 처음에 만났던 웹자보였습니다. :)

전쟁없는세상 관계자분이 만들어주신 거라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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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입구는 사실 잘 모르는 곳이라 긴장했었는데,

요렇게 귀엽게 발바닥 붙여주셔서 무사히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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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입구역, 깊숙~한 곳에 숨겨져있던 '숲의 큐브릭' 발견!

까페 주인께서 무상으로 빌려주셨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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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파티, 갈라쇼의 진행 순서였습니다.

전 특히 현민군이 직접 진행한 '거부자의 편지' , 역시 이 부분이 가장 진솔하고 맘에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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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거부 소견서를 1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으로 작성해오셨더라구요.

읽다가 중간 중간 웃고 울던 현민씨 목소리에, 듣는 저도 가끔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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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견서를 낭독중인 현민씨.
가족들에게 어떻게 전해야할지, 아직도 고민중이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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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이 끝나고, 병역 거부 선배님(?)들께서 나와서 지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죄송하게도 성함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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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현민씨의 친구분이라는 '셀린디온'님의 축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즐거운 분위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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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요로코롬 춤도 췄고요~
사실 무슨 춤인지, 무슨 노랜지는 몰랐지만 덩달아 흥겨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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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까페 풍경이었습니다. 전쟁없는 세상을 비롯해서 수유 너머 연구 공간 등,
현민씨가 그 동안
활동하셨던 여러 단체에서 지인분들이 많이 오신거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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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하이라이트!
현민씨가 크게 인쇄한 영장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병역 거부 파티는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마냥 가벼울 수 없었던 이유는, 앞으로 병역 거부 선언자로 살아가야 할 현민씨가 어떤 상황들을 만나게 될지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건 현민씨가 소견서에서 밝혔듯, 이제껏 알게 모르게 누려왔던 많은 기득권들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일 테니까요. 이제껏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그러해왔듯, 오히려 거부자로서 조금은 버겁기까지 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군대 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일인지는 여자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분단 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 놓여 있다는 것도, 또 자력도 없이 무조건 '평화'를 외치는 게 얼마나 어불성설인지도 압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찬반 논란을 떠나서- 이번 병역거부파티는 '국가 앞의 개인'이 어떤 식으로 그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엿본 시간이라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말로만 들어왔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어떤 고민과 과정을 거쳐 이런 결정에 이르게 됐는지, 그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도 사실이었구요.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현민씨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곧 공판이 열리게 될 것이고, 병역 거부의 의사가 여전한지 확인받은뒤 구속이 될 겁니다. 그리고는 결국 구치소에 수감되겠지요.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가치 판단을 떠나, 개인의 삶을 앞에 마주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내린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현민씨 스스로 평가하기를 '나약하고 우울한 기질의 성향을 가진 20대 청년이 보이는 찌질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던데, 뭐 그럼 어떤가요. 대단한 투사는 아닐지언정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기준에 따라 사는 진실한 청년,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그만해도 멋지다고, 진심으로 다시한번 말해주고 싶네요.  


*덧) 현민씨 지지까페 '현민에게 힘을 실어주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