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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취한 글들의 시간

최초의 경이, 박완서

 이미 가을이 깊었습니다. 엊그저께는 친구하고 전화하다가 단풍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리산 청학동의 어느 골짜긴가에 기막히게 아름다운 단풍길이 있었답니다. 그 길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천국으로 통하는 길이 저러하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우리 집 부엌 창문 밖으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보였습니다. 그날 갑자기 물든 게 아니련만 내눈에 띈 건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며칠 있으면 으스스 몸을 떨며 그 고운 잎을 아낌없이 떨구겠지요. 은행나무가 헐벗고 나면 그 밑의 보도가 얼마나 아름답고 푹신한 황금빛 융단을 깔게 되는지 우리는 압니다.


 가을은 이렇게 우리가 마중을 가도 오고, 안 가도 옵니다. 기다려도 오고 안 기다려도 옵니다. 그러나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가 있습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까지 안 가도, 부엌문 밖에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이에게 가을은 어디선가 신호를 보내면 아! 하는 경탄을 자아냅니다.


 때로는 골붉은 감잎 하나로도 천하의 가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김영랑 시인도 이렇게 읊었습니다.


 "오-메 단풍 들겄네"/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오아/누이는 놀란 듯이 쳐다보며/"오-메 단풍 들겄네"


 자연의 신비와 우리의 느낌이 만나 '아!'또는 '오-메'하는 순간이 신의 축복이고 삶의 절정이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감사의 시간입니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납니다. 어렸을 때 우리 시골집 뒤란에는 꽃나무가 많았는데 백일홍이나 맨드라미처럼 줄창 피어있는 꽃이 있는가 하면 나팔꽃이나 분꽃처럼 아침에만 또는 저녁에만 피는 꽃도 있었습니다. 나팔꽃은 아침에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벌써 피어 있으니까 할 수 없지만, 저녁에 피는 분꽃은 그 피는 모습을 내 눈으로 한번 똑똑히 봐두고 싶었습니다. 조금 전까지고 오므리고 있던 꽃봉오리가 한눈 파는 사이에 일제히 피어난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꽃들이 저희끼리 짜고 일부러 나 몰래 핀 것 같아서 얄밉기도 했습니다.


 어른들한테 분꽃은 언제 어떻게 피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보리방아 찔 때 핀단다." 분꽃은 여름에 피고 시골에서는 여름 내내 보리밥을 먹지요. 들일에서 남자들보다 한 걸음 먼저 집에 돌아온 엄마나 누이들은 부랴부랴 절구에다 겉보리를 찧어야 합니다. 그 동안에 핀다는 소린데 그럼 보리방아를 안 찧으면 분꽃이 안 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한번 똑똑히 분꽃이 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봉오리가 활짝 벌어질 줄 알았는데 지키고 앉아있으니까 왜 그렇게 안 벌어지는지요. 나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약간 느신해진 꽃봉오리를 손으로 펴려고 했습니다. 잘 안되더군요. 인내심이 부족한 나는 기다리다 지쳐서 잠깐 자리를 떴다 와 보니 분꽃은 용용 죽겠지 하는 얼굴로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내가 억지로 펴려 했던 꽃봉오리만 피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지 뭡니까. 어른들한테 일렀더니 손독이 올랐다고 하더군요. 내 어린 손도 독이 되는데 어떤 인자한 힘이 꽃을 피웠을까?


 그건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내 최초의 경이였습니다.


<마태 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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