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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취한 글들의 시간

지금은 투쟁중


그러니까 나도 '투쟁'중인거라 해두자. 자꾸만 속으로 파고들고 싶어하는 나와 사람으로 세상으로 넓어지고자 하는 내가 투쟁하고 있다고 하자. 다 그만두고 싶고 내팽개치고 싶은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도, 돌아보지 않는 인연들에게 다시금 말을 걸고 손을 내미는 것도, 맘껏 비판하고 제멋대로 비관하고 싶은 걸 참고 의지로 낙관하는 것도, 수많은 남들 가운데서 나를 어르고 달래며 지키는 것도, 다 투쟁이라고 치자. 그래 그리 해두자.


십대 때 나 혼자 조용히 국어사전을 펴들고 '사랑'이라는 말을 찾아보았다.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포켓국어사전에는 "중히 여기어 아끼는 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중히'의 무게감과 '아껴'의 애틋함이 전해져서, 그 뜻을 지금껏 중히 여기어 아끼고 있다. 이십대 때에는 대학 도서관으로 저벅저벅 들어가서 '투쟁'이라는 말을 국어대사전에서 뒤졌다. "①목적을 이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하는 것 ②상대편을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라 적혀 있었다. 싸움 투. 다둘 쟁. 그 풀이는 장차 시인이 될 어느 청춘에게는 너무 거칠었다. 그래서 다시 한영사전을 꺼내 들고, 투쟁을 영어로는 무엇이라 표기하는지를 찾아봤다. 'conflict' 혹은 'struggle', 두 개의 낱말을 만났다. conflict에는 갈등과 충돌이라는 상(호)충(돌)의 의미가 바탕에 깔려 있었고, struggle이라는 말에는 안간힘을 쓰는 상태라는 의미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나는 struggle에다 연필로 밑줄을 긋고 페이지 귀퉁이를 접었다.


struggle은 '투쟁하다, 고투하다, 몸부림치다, 허우적거리다, 힘겹게 나아가다, 나쁜 결과를 막기 위해 싸우다, ~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다, 힘이 들다' 등으로 사용된다. 부조리한 상황에 대하여 지치지 않고 안간힘을 쓰는, 고귀한 삶에의 의지. 여기엔 포기하지 않는다는 억척스러움이, 꼿꼿하고 굳세지만은 않다는 인간다움이, 낑낑대는 듯한 근근함이 포함돼 있다. 뻘 냄새도 나고, 살 냄새도 나고, 땀 냄새도 난다. '투쟁'이라는 게 반드시 패기와 결기로 똘똘 뭉친 지사의 행동양식만을 뜻하진 않는다. 몸부림치고 허우적거릴 뿐인 패자의 눈물나는 행동양식도 투쟁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냐고 연필을 집어던지는 십대의 책상머리도 투쟁이고, 세상에 되는 일 하나 없다며 절망에 찬 보고서를 촘촘하게 적는 이십대의 일기장도 투쟁이고, 비정규직 자처하며 하고 싶은 일만 골라하는 삼십대의 통장잔고 제로 상태도 투쟁이고, 포장마차에서 4인불 족발을 쌓아놓고 홀로 소주잔을 움켜쥔 사십대의 고독도 투쟁이고, 사표를 내던지곤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꿈꾸며 창업교육센터를 찾아가는 오십대의 용기도 투쟁이고, 인문학이 뭐냐며 공공 도서관의 무료 강좌를 찾아가는 육십대의 발걸음도 투쟁이다.


공짜 자전거를 주겠다는 유혹을 거절하며 신문 구독을 끊은 것도 내겐 투쟁이었고, 감옥에서 쉽사리 풀려나오는 사람이 경영하는 회사 제품을 일부러 사지 않는 것도 나에겐 투쟁이었고, 차를 팔고 낑낑대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라 핸드백을 버리고 배낭을 선택한 것도 나에겐 투쟁이었다. 관객 없는 진지한 영화에, 주목받은 적 없는 먼지 쌓인 시집에, 텔레비전에 얼굴 비칠 일 없는 가수의 앨범에, 진지한 고전보다 천박하고 조야하고 거침없는 새 문화에 '잘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마음으로 투자를 하고자' 지갑을 여는 것도 내겐 투쟁이었다.


빨리 걷는 출근길 인파 속에서 슬리퍼를 찍찍 끌며 걷는 걸음도 투쟁이고, 남들이 땅을 보는 법을 공부할 때 하늘의 별자리를 보는 법을 공부하는 것도 투쟁이고, 모두가 식도락을 즐길 때 소박한 풀밭 밥상에 만족하는 것도 투쟁이고, 금전출납부를 쓸 시간에 음악을 듣는 것도 투쟁이고, 궁리를 할 시간에 몽상을 하는 것도 투쟁이고, 판단을 할 시간에 사색을 하는 것도 투쟁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봄날에 내렸던 어이없는 폭설들도 극렬한 투쟁임을, 개발 공사 중인 금강에서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발견된 물고기떼의 말없는 죽음도 더없이 극렬한 투쟁임을, 아스팔트의 균열 사이를 비집고 나온 잡풀들도 투쟁하는 중임을. 엉뚱한 행동, 기괴한 상상력, 불편한 공간, 까칠한 성격 등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우울하고 슬프며, 서럽고 괴로워 흐물대는 우리의 실상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이 괴기함을 지닌 텍스트, 이 우울한 모습을 한 사람에게 매혹당할 때에도 우리는 투쟁의 일부가 된다. 여기엔 싸워서 이기고 쟁취할 거란 의지 따위는 없다. 낙오를 각오한다는 의지 또한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다는 천성과 이렇게 해야만 내가 조금은 행복해진다는 진심이 있을 뿐이다. 내팽겨쳐진 인간의 천성과 인간의 진심을 사모하기 위해 삶을 낭비해도 괜찮다는, 투쟁이 있을 뿐이다.


간밤에 '중히 여기어 아끼고 싶은 마음'을 애써 표현하려 허우적거렸던 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표현의 분열과 균열 속에서 낭패감을 맛보며, 밤새도록 눈물을 흘린 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허우적거렸고, 분열했고, 울었던 한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사람은 어쩌면 뻘 냄새, 살 냄새, 눈물 냄새를 풍기며, 이전에 있던 자리와는 다른 곳을 향해 환형동물처럼 조금씩 이동하지 않을까.


/ 김소연 시인_ 한겨레<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