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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일상은 아름다워

따뜻한 슬픔, 조용한 위로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실까?
더럽고 추악한 인간들에게 관심이 있을까?
세상은 왜 태어날때부터 불공평할까?
우리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왜 못된 사람들이 더 잘 사는걸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님은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계실까?
한 인간이 생을 다해 할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리에 떠다니던 새해였어요.
그리고 오늘, 평소 교회에서 잘 알고 지내던 K오빠와 만났습니다.
만나면 늘 툭닥툭닥 장난만 쳤지만, 서로 미워하는 척 했지만 실은 누구보다 더 정이가던 오빠.
힘들 때마다 쪽지로 기도를 부탁했던 오빠. 그런 오빠의 부친이 며칠 전 돌아가셨습니다.
암이 재발해서 뇌까지 전이되었다네요.
 
오후 내내 꿈을 꾸는 기분이었어요.
가족을 잃은 오빠의 슬픔이 얼마나 크고 또 깊을지,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어 겁이 났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신다면,이란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봐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물론 K오빠의 부친께서는 오랫동안 아프셨고 그래서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했겠지만...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예요.
평소엔 입지도 않는 검은색의 옷을 찾으면서도. 갈까 말까 망설였던 이유는 말이지요.


오빠를 위로할 슬픔의 말이, 나에게는 없었습니다. 


       

Lonely
Lonely by (david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가실까요?

 
...눈물이 자꾸 났습니다. 버스를 타고 저 멀리 이천까지 왔는데도, 정작 빈소에 들어서니 발걸음이 망설여졌어요. 멀리서 상복을 입은 오빠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통 모르겠더라구요.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갈팡질팡하다 결국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국화꽃을 들어 영정 앞에 놓고, 잠시 기도를 하고... 뭐라고 기도했는지도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마 굉장히 횡설수설했을거예요.

예상한대로 오빠는 생각보다 훨씬 의연했습니다. 상주로서 조문객들을 맡는 태도도 어른스러웠고, 몰래 살펴본 표정안에도 슬픔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니, 꼬깃꼬깃 잘 숨겨져 있었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그렇지만 그 속내는 어땠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디 괜찮기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를 바랄 밖에요.


여러 화환과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가집.
푸석한 얼굴로 앉아있던 친척들.
어지러울만큼 쨍했던 빈소 안의 전등.
낮게 울려퍼지던 찬송가 소리.
오열하던 아주머니의 얼굴.
K오빠의 쓸쓸한 눈빛. 손. 상주들...   



그저 손 한번 꼭 잡아주고, 밥 잘 챙겨먹고 어머님 잘 보살펴드리라고, 따뜻하게 눈 한번 마주치는 것으로 그렇게 조문은 끝났습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했는지, 할 수 있는지 정말로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나중에, 모든 장례 과정이 끝났을 때 오빠가 혼자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누군가 함께 있다면 그래도 낫지 않겠어요. 제발 혼자 울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무리 슬퍼도 삶은 계속되고, 억울하게도 산자들의 세상은 잘 굴러만갑니다. 


오빠의 푸석한 얼굴이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다시만나 예전처럼 장난칠 수 있길,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길, 혼자서 버티기 힘들땐 꼭 다른 이와 함께이길 바랍니다. 그게 나여도 좋고, 다른 누구여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냥 따뜻한 슬픔과 조용한 위로로- 그렇게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빠, 힘내요.
힘내라는 말 밖에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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