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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인간적'인 만남

그 청년 바보의사, 그가 그립습니다


 한 젊은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명망가나 의료계의 권위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학계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의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 중에는 동료 의사와 간호사, 환자, 그리고 그가 다니던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고루 섞여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자신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젊은 의사는 조금 일찍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성취를 이룬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책을 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그의 동료 선후배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꺼이 추천사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저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으니까요. 

(…중략…) 어떤 정치가의 뛰어난 웅변도 이 청년처럼 진심으로 우러나는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의 모든 말과 기도는 말뿐이 아닌 실천이 항상 뒤따랐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널리 알림으로써 사랑과 헌신으로 살았던 그의 정신이 세상에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길지 않았던 그의 삶이 우리 사회에 따뜻한 '위로'의 기호로 남길 바랍니다. 또 그렇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 2009년 7월, '시골의사' 박경철 추천사, '그가 그립습니다' 중 -




 병원에서 한참 심심해하던 나를 위해 오빠가 가져다준 '울지마, 톤즈'란 다큐멘터리 영화. 아프리카 오지마을인 톤즈를 위해 헌신하시던 故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보면서 생각했다. 왜 하나님은 저렇게 필요한 분을 대장암으로 데려가셨을까(2010년 1월 사망), 사람의 목숨값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나보다는 저 분이 아닐까, 하고. 물음표만 늘어가던 궁금증은 '내려놓음'이란 책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인간적인 생각에 비춰봤을 때 죽음이란 어떠한 설명으로도 이해될 수 없는 '끝'의 개념이었지만, 하나님은 역시 내 생각을 초월해 일하시는 분이었다. 이태석 신부의 죽음으로 인해 그가 하던 일들이 알려지고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은 차츰 이태석 신부님께서 하시던 일들을 이어받아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죽음을 통해서도 계속 일하시는 하나님. 나로써는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처음엔 다큐로 만났던 신부님. 그런데 '울지마, 톤즈'를 내가 입원중인 안암 고대병원에서도 특별 상영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을 만나고, 바로 그 다음 주 수요예배때 들은 말씀은 어느 브룬디 신앙인의 의료선교에 관한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들은 날 자기 전 들었던 라디오 방송에서는 '그 청년 바보의사'란 책의 한 구절을 소개했고, 궁금했던 나는 친구에게 故 안수현 의사의 일대기인 이 책을 빌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 날, 같은 병실의 한 할머니와 같은 교회의 친구가 똑같은 책을 읽고 있는걸 발견하고는 또 깜짝 놀라야 했다. 이태석 신부님, 안수현 씨, 데오 그라시아라는 브룬디 의사….  내 앞에 자꾸만 나타나는 '의료 선교'의 길과 신앙의 멘토들을 보며, 속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이 마음이 정말 하나님의 마음일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길을 가기 원하시는 걸까?'라고 재차 묻고는 했다.


 아직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걸수도 있겠다. 저번 주일에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말씀 가운데 그 단어를 주세요, 그러면 내가 정말 믿고 행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지만, 그날 말씀은 오히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나,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것은 십자가의 도'라는 것이어서, 말씀을 들으며 표적을 구했던 스스로가 뜨끔해 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만 이 길은 내가 걸어왔던 길과는 180도 완전히 다른 길이고 하여 이 길을 가려면 또다시 많은 공부가 필요하며 많은 시간과 많은 돈도 들어갈텐데. 엄살을 피우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심 내가 이렇게 많이 다친 것만으로도 부모님께는 이미 충분한 걱정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무언가를 더 시작하겠다고 한다거나 등록금이 필요하니 재정적으로 도와달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염치없는 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더불어 어리석고 결함 많은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물론 내 약함을 넘어서는 능력이 주님 안에는 있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어쨌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 장 한 장 이 책을 읽었다. 왜 전엔 몰랐을까. 왜 이전엔 이 분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것일까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뭉클했다. 하나님은 정말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 빨리 데려가시는 걸까. '스티그마(흔적)'이라는 그의 이전 필명처럼 예수님의 흔적을 좇아 살다가 서른 세살, 예수님과 같이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 청년 바보의사'의 삶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며 진찰했다는 의사, 다시 그런 사람이 나타날지조차 의문이 드는 바보의사 고故 안수현 군. 고인이 하늘에서 평안하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책에서 감명 깊었던 부분을 함께 나누고자 여기에 올린다. 


- "여호와 라파 치유의 하나님, 우리 A환자 분의 병을 낫게 하여 주십시오. 좀더 시간을 주셔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게 하여 주시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치료만 할 뿐이니, 우리 주님께서 몸과 영혼을 깨끗하게 치유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15p) 

- 그리스도인은 의학적으로 혈관(vessel)에 비할 수 있다.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그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할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더 많이 나누고 베풀수록 그 '혈관' - 그리스도인 - 을 통해 더 많은 피가 흘러, 혈관은 더 튼튼해지고 커져서 더 많은 생명의 피를 흐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는 노력을 멈추면, 그 혈관은 퇴화되고 더 이상 생명이 전해지지 않는다. 마친내 주변의 다른 혈관이 자라나 그 일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2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