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경이 (1) 썸네일형 리스트형 최초의 경이, 박완서 이미 가을이 깊었습니다. 엊그저께는 친구하고 전화하다가 단풍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리산 청학동의 어느 골짜긴가에 기막히게 아름다운 단풍길이 있었답니다. 그 길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천국으로 통하는 길이 저러하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우리 집 부엌 창문 밖으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보였습니다. 그날 갑자기 물든 게 아니련만 내눈에 띈 건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며칠 있으면 으스스 몸을 떨며 그 고운 잎을 아낌없이 떨구겠지요. 은행나무가 헐벗고 나면 그 밑의 보도가 얼마나 아름답고 푹신한 황금빛 융단을 깔게 되는지 우리는 압니다. 가을은 이렇게 우리가 마중을 가도 오고, 안 가도 옵니다. 기다려도 오고 안 기다려도 옵니다. 그러나..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