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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기쁨/호주에서 뛰놀기

호주에서 맞이 한 다국적 생일파티

...그렇게 나는 스물 네 살이 되었다 :) .

니야리가 몰래 주고간 선물


친구의 친구로 얼떨결에 친해진 베티Betty가 찾아와 그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신나게 이야기하고, Sue도 놀러와 다같이 놀러갈 계획을 세우는 동안, 그렇게 23일이 시작되었다. 시계 바늘이 12 가리키는 순간 걸려온 B군의 전화. 헤헤, 고마워 자기!

Happy Birthday, Ann!

 

아침에 눈을 뜨니 왜인지 몸이 피곤한 기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 다시 잠을 청했다. 11시쯤 알바하러가려고 했는데, 데이비드David가 전화해서는 9 왔어야했는데 깜빡하고 말을 안했단다. 미안하다고, 다음주에 일해달라고 해서 응 그래요!하고 흔쾌히 승락. 피곤했는데 잘됐다 싶었지 뭐.

 

타지에서 처음 맞는 생일이라 뭘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었다. 목요일 저녁에 쵸큼 부담되는 프레젠테이션을 막 마친터라 준비할 경황도 없었거니와, 누굴 초대해서 뭘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던 차. 고민끝에 결국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좋아하는 친구들 초대해서 한국 음식 해먹어야지라고 결정! 공책을 펴고 한명 한명,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을 써내려갔다. 콜린Colin이랑 니야리Nyari는 꼭 불러야지. 베티Betty도 그렇고, 시티Siti는 오래 못봤으니까 꼭 생각해보니 함께 밥먹고 싶은 친구들이 꽤 있었다. 밥을 먹는다는 게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럴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이 기회를 빌어서 함께 하고 싶었어.

 

좀 늦었다 싶었지만 생일 전날 밤에 단체 문자를 돌리고, 당일에도 몇 명 더 초대했다. 아침에는 어슬렁거리며 일어나 베티와 함께 울월스Woolworth로 먹거리를 사러 갔다오고, 잠시 낮잠을 잔 뒤 요리시작. 5 모이기로 했지만 결국 다 모인건 6시쯤? :) 그래도 다들 너무 반갑고, 갑작스런 초대였을텐데 와준 것만으로 고맙고 예쁘고 그랬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건넨 친구들은 더 예뻤고. 헤헤.

 

요리고 뭐고... 그저 웃지요 :)

요리의 요자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내가 이 친구들을 위해 (한국)요리를 다 했다는 거! 주 메뉴는 닭도리탕과 불고기였다. 물론 미리 소스를 다 사놓긴 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나름 도전이었기에 :) 한 시간 동안 부엌을 초토화시킨 후에야 짜잔- 김 모락모락나는 한국 요리 등장. 내가 매운 걸 잘 못 먹는 건지, 난 매웠는데 오히려 호주 친구들은 맛있다고,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본다. (몰라, 그냥 소스병에 써있는대로 따라했어! 하하)

 

좋아하는 친구들과 모여먹는 행복한 저녁, 별거 아닌 게 그 순간만큼은 정말 별것처럼 느껴졌다. 곧 헤어져야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모두 웃고, 시끌벅쩍 떠들고, 이야기하며 저녁을 먹고, 디저트로 초콜렛/스폰지 케이크를 먹고, 친구들이 만들어준 스페셜 애플파이도 시식했다. 먹고 먹고 먹고의 연속이었지만 :) 실은 안 먹어도 배불렀더랬지. 그냥 애들이랑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달까. (써놓고 나니 좀 느끼하네ㅋㅋㅋ)

 

축하해주러 온 친구들을 세어보니 10. 근데 신기한 건, 다들 가지각색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는 거다. 호주 토박이인 크리스Chris, 독일에서 온 나탈리Natali, 말레이시아에서 온 시티Siti, 인도네시아인 이코Iko, 호주인이지만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콜린Colin, 비슷하게 대만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베티Betty, 짐바브웨에서 온 니야리Nyari, 일본에서 온 카오리Kaori와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온 진Jin과 레이첼Rachel! 그걸 알고나니 괜히 신났다. 이런 게 바로 멀티컬쳐럴Multi-cultural 파티지! 히히. 그래서 갑작스럽게 낸 제안 하나.

 

우리 다같이 한마디씩 하는 게 어때? 대신 각자 나라 말로 하는 거야. 못 알아들어도 괜찮으니까, 아무 말이나 해줘. 나는 촬영할게. 베티의 카메라를 빌려 촬영 시작. 니야리의 짐바브웨어(?)를 시작으로 모두가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정말 신기했다. 특히나 독일에서 온 나탈리는 아직 영어가 서툴러서 대화할 때 좀 어려웠는데, 독일 말로는 술술술 아주 차분하게 얘기하는 거 보고 역시~ 이놈의 영어가 문제야.ㅋㅋㅋ 콜린도 짤막했지만 기억할수 있는 최대한의 아프리칸어로 뭔가 얘기해줬다. 찍는 것도 신나고 재밌었긴 한데, 이거 언제 다 알아듣지? 랭귀지그룹 사람들에게 부탁해볼까나. :) 어쨌건 좋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이 설거지와 정리까지 완벽히(솔직히 전보다 더 깨끗해졌음) 해주고 난 뒤 돌아갔다. 물론, 가기 전엔 따뜻하게 포옹 한번씩 하고. 와줘서 진짜 고마워. 선물 같은 거 안 줘도 그냥 여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진짜 좋아 난. Im so glad you guys are here!을 한 세 번은 말했던 거 같다. 나 사실 이런시간 되게 그리웠거든. 하하.

 

애들이 누으라고 시켰음 ^.^

친구들 몇 명이 떠나고, 여자 넷이 남아서 연애상담(?)좀 하다가 모두 돌아가고 나니 11시쯤. 조용했지만 시끄러웠고, 산만했지만 행복했던 스물 네살(요기선 23th) 생일이었다. 파티에 와준 친구들뿐 아니라 먼 곳에서 전화해 준 엄마와 B, Y, 쪽지로 축하해준 한국 친구들도 모두모두 고마워. 이런저런 일로 다들 바쁜 거 나도 알지. 늦었어도 기억하고 축하해주는 그 작은 마음, 그게 참 고마운 거지. 덕분에 따뜻하고 행복한 생일이었어. :-)

 

곧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거, 떠올리면 마음이 든든해지면서도 가끔은 언젠가 먼 훗날- 지금 여기와 이 시간들이 아주, 많이, 그리워질거란 예감이 든다. 가끔은 나 무사히 한국 돌아갈 수 있을까?라고 진지하게 물을 정도로 힘들기도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과제의 산들이 다섯 개 정도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되겠지.

 

조금만 더 힘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에 던져졌지만, 아직도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숨쉬며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진흙탕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잖아. 나도 그래. 살아있어서 감사해.

 

B군과 얘기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 5월엔 또 어떤 모습일까? 그때의 난 일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여행 중일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근데 그게 어떤 모습이든, 어떤 이든 그래도 어쨌든 다 괜찮을 것 같다는- 무식하고 서툴고 과하게 긍정적인- 그런 느낌이 들긴 한다. 씨익 :)   


* 내 생일과는 별개로,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참... 먹먹하고 마음이 아렸다. 정말 뭐가 어떻게 되가는건지, 한국 사회가 휙휙 미쳐돌아가는 것 같아 무섭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