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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기쁨/나를 엿보다

상강을 지나는 어느 모과의 일기


나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 밝은 미래를 그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잡생각은 늘어나고, 꿈을 그려가는 그 길 위, 내가 어디쯤 서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생활의 한 90%를 집에서 보내는 것의 장점은 가족과의 유대감이나 친밀감이 깊어진다는 거다. 부모님과 자주 시간을 보내며,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깊어지면서 자연히 친밀도도 높아졌지만 반대로 할머니와는 오히려 더 충돌하게 되었다. 할머니께선 계속 내게 이런 저런 충고를 하시는데, 그게 걱정에서 비롯됐다는 건 알지만 그걸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결국 잔소리로 들릴 뿐. 더 어려운 점은 당신이 잘 듣질 못하시니 소통이 불가능 하다는 거다. 이런 경우 나는 계속 고개를 주억거리다 수긍해야 한다. 사실 그게 아니에요, 이런 이유가 있었어요,하고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시니 결국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소통의 욕구를 접고야 만다. 오늘도 그랬다. 

어떤 한 개인에게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면 대개 그 여파는 주변 사람에게까지 미친다. 가족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의도하건 의도치 않았건, 원인은 한 사람에게 있는데 남은 사람들마저 연대 책임을 지는 식이다. 10년 전의 우리 집도 그랬고 주변의 얘기를 들어봐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 원인이 내가 되어 느껴보니, 어쩔 수 없이 그 책임을 함께 지고가는 사람들도 힘들겠지만 역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진건 사건의 당사자라는 생각이 든다. 피할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삶이란 게 원래 그렇지,하고 쿨하게 넘기기엔 처음 겪는 이런 시간이 쉽지 않다. '어렵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마음을 다잡아야 할 만큼.

며칠 전, 이벤트로 선물받은 <크리티컬 매스>란 책을 읽을 때 느낀게 있다. 소위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삶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실패나 좌절이 반드시 전제돼 있다는 점이다. 배우 장혁만 해도 오디션에서 약 120번을 떨어졌었고, CCN 메인앵커로 빛나는 앤더슨 쿠퍼 역시 한창 예민할 20대 초반 형이 자살을 했었다고. 그래, 책에서 나온 '모과는 상강(霜降)이 지나야 향이 난다'는 말처럼 사람도 된서리와 같은 시절을 잘 지났을 때 향이 깊어진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런 건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의 성과를 쌓았을 때의 얘기고, 정작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는 처음 맞는 이 된서리가 그저 아플 뿐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버티지 않고 즐길 수는 없는 것일까... 응원해주며 함께 가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가끔, 외롭다. 

현재의 시간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모르겠다는 사실과,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과, 그러나 그렇게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조바심이 섞여 자꾸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허나 한편으론 또, 자꾸만 찾아오는 이런 절망과 자괴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 싶다. 난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냐!!!라고 외치면서 말이지. 결국 방법은 아프건 힘들건 어찌됐건 그저, 꿋꿋이 살아내는 것 뿐이겠지. 육체의 장애가 마음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나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랑해 실오라기 걸치지 않았을 때도 믿고 지지하는 연습. 정말 질리도록 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서툴구나. 언젠가 말했듯 나는 내가 나여서 좋다,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깊게 긍정하고 싶다. 그야말로 온전하게,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때가 되어야만 나는 한 뼘 더 자라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떨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