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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취한 글들의 시간

2014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운 겨울이 싫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싫다. 손발이 차서 추위를 잘 못 견디는 내 탓도 있지만 그보다도 가뜩이나 추운 사람들 더 춥게 만드는 게 싫다. 어제 오랜만에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에 갔는데, 밖으로 거세게 이는 바람에 천막이 무너질까 겁날 정도였다. 사고 이후 누구보다 친해진, 각기 아들을 잃은 민우아빠와 영석아빠는 큰 겨울코트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농성장을 비울 수 없으니 거기서 잔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11일 실종자 수색작업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에 수색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우리 아빠, 내 딸, 내 동생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돌아서면서도 "누군가에게 고통이라면 저희가 수중수색을 내려놓겠다"고 한다. "저희 결정으로 인해 정부의 고뇌도, 잠수사 분들의 말 못할 고통도,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의 고생도, 진도군민의 아픔도 모두 사라졌으면 한다"고도 썼다. 이주영 장관은 "용단에 경의를 표한다"지만 나는 도무지, 그 마음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4월 말인가, 세월호 침몰사고 취재로 진도체육관에 처음 갔는데 도무지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디까지 취재할 수 있는 건지, 당장 내 새끼 죽었을까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을 붙잡고 뭘 어떻게 물어야 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혼자 끙끙대다가 겨우 한 아버지를 붙잡고 "저기..."하고 말문을 여니까 그 분이 알아보고는 그랬다. "지금은 못하겠어요. 우리 딸 찾으면, 돌아오면 할게요." 무참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급히 쪽지에다 '죄송하다, 따님 꼭 돌아 올테니 건강 잘 챙기시라' 전해드렸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그제 수색중단 요청 기자회견을 하는 실종자 가족들 속에 있었다. 그 때는 반팔을 입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고서.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국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도 봤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서 또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며 고민 회피하는 게 얼마나 무책임한 건지 알지만 정말 잘 모르겠다. 무능해서..

 

사람의 선의를 믿는 편이다. 하루하루 견디듯 쥐어짜듯 기사를 쓸 때도 있지만, 그저 하루를 온전히 버티는 것이 그 날의 목표일 때도 많지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고, 그것을 바라며 기사를 쓴다. 그렇게 작고 작은 개인들의 노력이 모이다보면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 오겠지, 생각한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고용주는 대개 힘이 세고 영리하고, 노동자들은 힘이 없는데 뭉치기도 어렵다. 목소리도 잘 안 들려. 그래서 전광판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자살까지 하며 세상에 우리 좀 봐달라고 한다. 그 귀한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옛날엔 말이야, 배가 침몰돼서 수학여행 갔던 고등학생들이랑 일반인 295명이 바다에 빠져 죽었어. 9명은 찾지도 못했어. 지금은 절대 이해가 안 가지? 그런 날이 있었단다." 언젠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295명이 죽고 9명이 실종된 2014년을, 단 한 명의 국민도 구하지 못했던 정부를,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모르겠다. 내년이 돼서 한 살 더 먹는 건 별로지만, 추운 게 싫다.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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